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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진정한 의사)

작성자명이**
조회수876
등록일2017-12-06 오후 10:03:19

진정한 의사


이국종 신드롬이다.

필자가 2006년에 집필해 현재까지 13쇄가 찍혀 출판되고 있는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에는 이 땅의 진정한 의사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동료의사들에게 바치는 헌사가 있다.

사실 이국종 선생님이 알려져서 그렇지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 위대한 의사들이 많았다. 1908년 제중원 의학교(연세대 의대 전신)를 졸업한 7명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의사면허를 받게 된다. 이 중 김필순, 박서양, 신창희, 주현칙 등이 일제 강점기 때 의사로서의 부와 명예를 버리고 중국으로 떠나 독립운동을 펼친다. 대표적 인물이 김필순이다. 그는 졸업 후 세브란스에서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에서 활동하다가 ‘105인 사건에 연루돼 중국 망명길에 오른다. 서간도와 몽골 근처에 독립기지와 병원을 세우고 안창호와 긴밀히 연락하며 모든 것을 독립에 쏟아 붓다가 일본 특무대원에 의해 41세 젊은 나이로 타계한다. 망명지에서 쓸쓸하게 간 불꽃같은 그의 삶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19193·1 운동 당시 한반도에서 조선인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경성의전, 세브란스의전, 법관양성소 뿐이었고, 많은 의대생이 3·1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음도 대부분 모른다. 1928년 한국인 최초로 경성의전 외과 주임교수를 지낸 백인제는 경성의전 학생대표 때 3·1 운동 때문에 한때 퇴학을 당했었다. 김두한, 시라소니 같은 전설적 주먹들이 일본인과 싸움판을 벌인 후 찾아간 병원도 백인제가 세운 명동의 백병원이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 민영 일간지 독립신문을 발간한 서재필은 한국 최초의 서양의사였다. 1884년 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미국으로 망명해 의사가 되었다가 조국에  돌아와 독립을 위해 일했던 것이다. 장기려 박사는 6.25 전쟁 때 평양에서 부산으로 피란을 와 고신대 복음병원의 전신인 천막 복음병원을 세워 피난민들을 무료로 치료하고 건강보험의 모델이 되었던 청십자 보험을 만들어 돈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일생을 바쳤지만 정작 자신은 변변한 집도 없이 살아 성인으로 지금도 불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엔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까지 되어 인류의 주치의라 불렸던 이종욱도 있었고, 슈바이처처럼 오지에 나가 의술과 사랑을 전한 이태석, 양승봉 같은 의사도 현재 수십 명이나 된다. 3년 전 아프리카 에볼라 지역에 파견할 의사 10명을 뽑는데 35명이 지원해 정부가 놀랐고, 2년 전에는 메르스 전사로 생명을 걸고 진료했던 많은 의사가 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누굴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대답은 슈바이처. “우리나라 의사 중에 존경하는 의사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아무 대답도 못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존경받을 의사들이 많았고 지금도 많다.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