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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남지 2017년 2월호(라라랜드와 종교개혁)

작성자명이**
조회수807
등록일2017-02-06 오후 6:12:27
첨부파일

라라랜드2.jpg

‘라라랜드(La La Land)’와 ‘종교개혁(The Reformation)’


장안의 화제인 영화 ‘라라랜드’와 올해 500주년을 맞는 ‘종교개혁’을 대비한다면 다소 엉뚱할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는 전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1.복고의 부활입니다.

‘라라랜드’를 보면서 195~60년대 허리우드 전성기 뮤지컬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사랑은 비를 타고’를 떠 올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고전적인 뮤지컬 영화를 오마주한 복고풍의 뮤지컬 영화가 맞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31세의 젊은 감독 다미엔 차젤레가 과거 화려했던 뮤지컬 영화의 부흥을 꿈꾸었다면, 1517년 당시 34세의 젊은 루터가 꿈꾸었던 것은 초대교회의 부흥(Revival)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517년, 젊은 신학교수이자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그곳 대학교회의 문 앞에 95개의 논제를 내건 사건으로 불꽃을 터트린 ‘종교개혁’은 간단히 말하면 초기 사도적 교회로의 회복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새로운 신학운동이 아니었고, 이미 사도적 교회로부터 있어 왔으나, 오랜 세월동안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권과 미신, 그리고 비복음적인 전통 속에서 가려져 있던 것을 개혁을 통해 다시 확인했을 따름입니다. 그가 주장한 교리는 이미 초기 기독교 대표적 신학자인 어거스틴(영어명:Augustine, 라틴어명: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과 사도 바울이 밝혔던 기독교의 정통교리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조직적인 탄압 하에서도 개혁신앙은 미미하나마 유지, 계승, 발전되어 오다가 16세기에 다시 부흥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가 개신교를 ‘새로운’ 어떤 것이라고 지목했던 것은 개혁운동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사도적 기독교와 관련성이 없는 이단운동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라는 관점이 많습니다. 교회사가들은 교회의 변질이 시작된 시점이 아이러니하게도 탄압이 없어진 4세기 초부터로 보는데, 그것은 313년 로마의 기독교 공인, 380년의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가 그것입니다.


2. 대역을 없애 버린 것입니다.

 라라랜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대역없이 배우들이 엄청난 노력으로 직접 노래와 춤 심지어 피아노 연주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대역을 썼다면 테크닉 적으로 더 잘할 수는 있었겠지만, 배우들도 관객들도 우러나오는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종교개혁 전에는 우매한 민중들이 거룩한 성경을 직접 읽는 것 자체를 금기시해 신부들만이 식자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었고, 찬양도 잘 훈련된 성가대를 통해서만 예배 중에 찬송하도록 하여 회중은 듣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회중들이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고 이것은 그의 최대 업적으로까지 꼽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 중에 찬송가를 회중이 함께 제창 할수 있도록 바꾸었습니다. 루터는 많은 곡을 직접 만든 작곡가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곡이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입니다. 남이 읽어 주는 성경과 남이 찬양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는 영적 충만함을 채울 수 없습니다. 사제주의 하에서의 이런 영적 침체가 개혁을 갈망하게 되었고, 이것이 개혁을 이루는 저력이었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교리의 개혁(Reform)과 영적부흥(Revival)이라는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명칭에 대한 오류입니다.

우리나라는 ‘라라랜드’라고 쓰는데, 사실 영어발음상 ‘랄랄랜드’라고 쓰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미 ‘라라랜드’라고 쓰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긴 합니다. ‘종교개혁’이라고 우리가 말하지만, 사실은 ‘교회개혁’이 맞는 말입니다. 영어의 ‘The Reformation’(정관사 the를 붙여 16세기 교회개혁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임) 을 ‘종교개혁’이라고 번역하게 된 것은 일본을 통해 서양사를 배우면서 일본의 번역에 따라 ‘종교개혁’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주된 종교가 기독교였고, 기독교가 서구 사회의 국가종교적 성격이 있었으므로 종교개혁이라는 번역이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모든 종교를 망라한 범종교적 쇄신의 의미로 오해될 소지가 있습니다. 호주에서 온 선교사로 평양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던 첫 인물인 왕길지(王吉志, G. Engel, 1868~1939)는 ‘The Reformation’을 ‘교회갱정사(敎會更正史)’로 번역한바 있습니다.


 4. 상상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물론 ‘위플래쉬’로 일단 이름은 알렸지만, 31세의 신출내기 감독은 이 영화가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인구 2천 명의 작은 도시였고 루터 자신의 표현대로 ‘문명세계의 끝’에 지나지 않았던 비텐베르크의 무명교수였던 34세의 루터가 95개 반박문을 붙일 때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독일어가 아닌 당시 식자들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로 써 붙였던 것을 보면, 그가 당초 원했던 것은 개혁이 아니라 토론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사건은 인쇄술의 힘을 입어 삽시간에 전 유럽으로 확대되었고 교회개혁의 거사로 발전되었습니다. 이것은 교회개혁은 누군가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역사의 필연이었고,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상 ‘랄랄랜드’를 양념으로 ‘교회개혁’을 나름 흥미롭게 설명해 보려고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도 올 한해 개혁자의 마음으로 믿음의 야성을 부활시키는 한해가 되기를 다짐해 보며 글을 맺을까 합니다.


  참고문헌:교회개혁사(이상규), 종교개혁사(롤란드 베인턴), 찬송가 이야기(이천진)글: 이종훈 편집장 moses2000@nate.com

(노은 6다락방 순장, 『성경 속 의학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