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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차범근)

작성자명이**
조회수1619
등록일2014-07-16 오후 6:18:00

 

차범근

 

 

월드컵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차범근의 해설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아쉽게 한다. 이번 월드컵이 그의 마지막 해설이라고 이미 공언했기 때문이다.

영국 스포츠 전문매체 <스포츠몰>에서 지난 5월21일 역대 한국 축구 베스트10을 선정했다. 1위 차범근 2위 박지성 ....

아이러니하게 조국인 우리나라에서만 차범근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데, 이것은 선수시절부터 시작된 축구협회와의 갈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고3때부터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공군축구팀 강화를 위해 2년 복무의 특혜를 약속받고 입대해 2년 동안의 복무를 마치고 1978년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의 SV다름슈타트98에 입단해 1경기를 뛰었는데 군대의 입장이 갑자기 바뀌어 출국 11일 만에 소환장을 받고 귀국하게 된다. 명목상 군대문제였지만 사실은 당시 축구협회는 우리나라보다 강했던 북한축구와의 일전을 대비하고 독일에서 너무 잘해서 혹시라도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때였다. 다음해 1979년 만기 제대 후 그는 다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팀에 스카우트되어 1989년 은퇴할 때까지 엄청난 기록을 세운다.

당시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고의 리그였는데, 역대 잉글랜드 최고의 축구선수로 손꼽히는 케빈 키건이 70년대 말 3년간 자국리그보다 한수 위였던 분데스리가에서 뛴 것이 그 방증이다. 분데스리가에서 갈색폭격기란 별명과 차붐으로 통했던 그의 주요 기록을 정리해 보면

 

분데스리가 308게임, 98골(이 중에 페널티 킥 골은 단 한 골도 없었고, 이 기록은 당시 외국인 용병 선수 최고기록, 이 기록은 10년 뒤인 1999년 슈테판 사퓌자에 의해 깨졌다.)

1980년 세계최고의 축구전문지 ‘키커’지 신년 표지 인물, 세계 베스트 11 선정

85~86 시즌 분데스리가 MVP(외국인 용병이 시즌 MVP가 되기는 정말 어렵다.)

1999년 월드사커지 20세기 축구에 영향을 미친 100인에 선정

 

미하엘 발락 : 여기가 차붐의 조국입니까? 너무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2002년 월드컵 독일팀 주장으로 입국 당시)

베켄바우어 :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가 독일에 있었다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으로 넣었을 것이다.(독일 최고의 축구 전설,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안았다.)

슈뢰더 독일 총리 : 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증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난 차붐부터 만나고 싶다.

 

어릴 적 향수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듯이, 영웅들에 대한 기억은 우리에게 자부심과 추억을 선사한다. 차범근은 영원히 기억되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