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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장애아의 부모)

작성자명이**
조회수1217
등록일2016-04-19 오후 11:35:47

장애아의 부모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오늘은 왠지 다른 설명 없이 드골 장군과 펄 벅 여사 이야기만 하고 싶어진다.

 

 

샤를르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전 프랑스 대통령은 일생동안 ‘프랑스의 영광’을 외치며 투쟁해 온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프랑스를 선진국으로 이끈 영웅이었지만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딸 안느 때문에 일생 괴로워했다, 그는 “내 삶의 축은 프랑스와 안느이다”라고 말할 만큼 딸을 사랑했다. 서거 할 때도 국장을 마다하고 딸 무덤 옆에 묻혔다. 언제나 초점 없이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눈과 비뚤어진 입술을 가진 딸이었지만 그의 고향 코롱뻬 집에서 해질 무렵이면 마을 사람들은 늘 입던 군복을 벗고 딸과 함께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넓은 뜰을 거니는 대통령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머금은 체 딸에게 그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곤 했다. 하지만 1948년, 드골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안느는 스무 살 젊은 나이로 아버지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드골은 이후 파리에 안느처럼 정신지체를 앓는 아이들이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안느 드골 요양소’를 세웠다. 틈나는 대로 그 곳을 자주 찾던 그는 남은 생애 대부분을 장애아들과 보냈다.

 

중국의 농민생활을 그려 미국인들에게 처음으로 중국문화를 깊이 소개한 역작 <대지>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Pearl Buck, 1892~1973) 여사는 불멸의 작가로서, 위대한 휴머니스트로서 동양과 서양문명을 연결하는 인간가교를 이룩한 세기적인 인물이다.

펄 벅 여사는 ‘노벨상’ 수상이란 최고의 영예 속에서도 정신지체아의 어머니로서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펄 벅 여사는 이 자녀를 주제로 1950년에 <자라지 않는 아이(The Child who never grew)>를 발표하면서부터 더욱 불우 어린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작품활동으로 모은 돈으로 1964년 <펄 벅>재단을 창설했다. 이 재단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5개국에 창설되어 미군들이 버리고 간 아시아의 불우한 2천여 혼혈고아들을 돌보았다. 펄 벅 여사는 당시 한국을 소재로 소설을 쓴 유일한 외국작가로 1960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9년 동안 여덟 차례나 한국 땅을 밟으면서 ‘한미 혼혈아’들을 양자로 삼아주는 자선사업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9명의 고아들을 자신이 직접 키웠으며 그 중 4명이 한국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