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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명장의 관용)

작성자명이**
조회수1293
등록일2016-01-28 오전 10:11:36

명장의 관용


 

우리는 조조를 권모술수가 능한 간웅이라고 여긴다.

조조가 간웅으로 각색된 것은 <삼국지연의> 때문이다. 진수(陳壽)가 <삼국지>를 쓴 것은 서기 200년이다. 나관중(羅貫中)이 소설<삼국지연의>를 쓴 것은 1368년이다. 역사책이 나오고 1000년이 흐르면서 민간전승과 전설 등이 덕지덕지 덧붙여졌다. 그러면서 유비는 후덕한 영웅이요, 조조는 덕은 없고 꾀만 많은 간웅으로 묘사되었다. 여기 조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역사가 있다.

조조가 북방의 군벌 원소와 맞붙었을 때다. 조조의 진영은 병력, 군량에 있어서 원소의 진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열세였다. 조조는 상대를 꼭 꺾고 말겠다는 각오로 겨우 버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조 휘하의 장수들은 자신감을 잃어갔다. 이런 분위기는 조정대신들에게도 전해졌다. 결국 조조의 부하들과 대신들은 원소에게 편지를 띄워 조조가 패하면 귀순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 편지를 받고 원소가 너무 자만한 탓일까. 반년 뒤 전세가 역전돼 원소가 패하고 말았다.

조조는 원소의 진영에서 가져온 전리품 가운데서 자기 부하들의 편지를 발견했다. 많은 신하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조조는 편지들을 열어 보지 않고 불태웠다. 그 뒤 조조의 휘하에서 미리 항복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춘추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장왕(蔣王)은 절영에서 잔치를 배설하고 장수들을 초대했다. 각 장수들에게는 아름다운 궁녀들이 한 사람씩 배정 되었다. 잔치의 흥이 높아질 무렵 갑자기 돌풍이 몰아쳐 방안의 불이 모두 꺼지고 말았다. 술도 거나하게 취하고 불도 꺼진 참이라 장웅(蔣雄)이란 장수가 한 궁녀를 희롱했다. 화가 난 궁녀는 장수의 투구에 달린 금술을 떼어 왕에게 바치며 “이 금술의 주인이 전하의 궁녀를 희롱했노라”고 고해 바쳤다. 절대군주에게 용서 받을 수 없는 무법한 행위였다. 그러나 왕은 시종들에게 명하여 불 켜는 일을 중지시킨 다음 초대된 장수들의 투구에 달린 금슬을 떼어 왕에게 바치도록 명령을 내렸다. 영문을 모르는 장수들은 왕명대로 금슬을 떼어 바쳤고 불이 켜진 후에는 궁녀를 희롱한 장본인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장왕이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사지에 빠져 있을 때 죽음으로 그를 구해준 장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궁녀를 희롱했던 장웅이었다.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려면 한두 번으로는 부족하다. 항상 생활화 하라는 뜻이다. 한문에도 덕불고(德不孤)라 하였다. 덕을 베풀면 외롭지 않게 된다. 관용만큼 아름다운 덕목이 없다.


글: 성모안과 원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