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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장훈)

작성자명이**
조회수1327
등록일2016-06-16 오전 12:02:20

장훈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최고 인기 스포츠는 야구가 되었다.

오늘은 내 마음의 영웅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로 통하는 재일교포 장훈(張勳) 선수 이야기를 해 볼까한다.

장훈 선수는 1940년 6월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사업상 일본에 정착한 아버지를 일찍 잃고 5살 때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11살이었던 큰누나를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 해 겨울에는 후진하는 트럭을 피하다 군고구마를 구어 먹던 화덕에 오른손이 들어가 화상을 입고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4,5번째 손가락이 붙어버렸다. 또한 오른손의 다른 부분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본래 오른손잡이였지만 중학교 때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왼손을 사용하여 좌타자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나무에 올라가 야구 경기를 보고 난 뒤 선수들을 뒤쫓아 갔는데 그들은 커다란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그 때부터 그는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어 스테이크를 맘껏 먹겠다는 꿈을 품고 야구를 시작했다. 중․고 야구부를 거처 당당히 프로리그에 진출했지만, 오른손의 화상으로 거의 왼손만 사용했던 그는 고교야구와는 달리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많은 프로리그에서는 고전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그의 배팅 코치가 오른팔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 뒤로 코치와 함께 하루 500번씩 오른팔을 사용해 공치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두 주일 정도 하니 오른팔에 통증이 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참지 못하여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했을 때 코치는 엄하게 충고했다. “네가 약하니까 아픈 거야, 여기서 이길 수 없다면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코치의 말에 자극을 받은 그는 쉴 새 없이 연습했다. 그리고 마침내 핸디캡을 극복하며 일본 프로야구사에 길이 빛날 대기록을 달성했다. 23년 동안 통산 성적은 2752경기(역대 3위), 9666타수(역대 2위), 504홈런(역대 7위), 3085안타(역대 1위), 타율 3할1푼9리(역대 4위, 7천 타수 이상 타자로는 역대 1위), 1676타점(역대 4위), 319도루(역대 21위)를 기록했다. 수위 타자 7회(4회 연속수상) 역시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고 기록이며, 500홈런-300도루 클럽 가입도 현재도 유일하다(메이저 리그에서도 3000안타-500홈런-300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윌리 메이스가 유일하다).

그는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프로선수로선 처음으로 1980년 7월 24일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을 때, <모든 울분을 흰 공에 풀라>고 가르쳐 주신 어머니 박순분(朴順分)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일본귀화의 끈질긴 권유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민족혼을 일깨워준 어머니 덕택이라고 하였다. 장훈은 1982년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길 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야구중계를 보다가 문득 우리에게 이런 영웅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펜을 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