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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대 안과 50년사' 에 실린 글

작성자명이**
조회수4472
등록일2009-05-11 오후 4:00:48

가톨릭의대 안과교실에 대한 나의 남다른 감회

조치원 성모안과 이종훈


3주전에 백남호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놀란 가슴으로 전화를 받은 내용은, 건너 건너 교수님 아시는 분이 공주에 사시는데, 거주지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기를 원하셔서 나를 추천해 주셨다는 전화였다. 표현은 못 했지만 나는 지나간 일들이 생각이 나서 한동안 멍하니 옛날 생각을 했다. 나는 1년차 때 안과하기 싫다고, 도망을 2번이나 간 놈이었다. 1998년 당시 여의도 의국은 스탭 7명, 전공의 15명이 전부 남자였고 분위기는 여의도 전체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군대 분위기였다. 23명 중에 타교 출신은 내가 유일했다. 열심히 해도 봐줄까 말까 할 상황의 놈이 도망까지 갔으니.... 당시 과장님이셨던 백 교수님의 마음을 지금에사 조금 이해가 갈 것도 같다. 5일간의 첫 번째 도망 후 의국장님인 정충기 선생님의 손을 잡고 수술방으로 백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90도로 꾸뻑 인사를 드렸고, 교수님은 “고생 많았다. 열심히 해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 사건이후 백 교수님은 더욱 어려운 분이 되셨다. 나는 부산의과대학을 97년도에 졸업하고 강남성모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당시 나는 안과를 전공해야겠다던지 가톨릭의대 안과의 위상같은 것은 사실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말턴이 되어 지원과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나는 고민을 많이 했다. 본교 출신으로 부족한 인턴자리를 메워준 타교 출신의 인턴들이 비인기과로만 지원하는 분위기가 가톨릭의대를 위해서나 타교 출신의 인턴을 위해서나 길게 본다면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이곳에서 인턴을 한 이유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예비하심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당시에는 강하게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미친척하고 가톨릭의대 최고의 인기과, 아니 한국 최고의 안과인 가톨릭의대 안과를 지원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타교출신의 인턴으로서 아름다운 선례를 남겨야겠다는 당돌한 생각도 했다. 내가 안과가 체질에 맞고 안 맞고는 당시에는 아무생각이 없었다. 강남의 의국장이었던 이의태 선생님께 안과를 지원하고 싶다는 말씀을 인턴들 중에 가장 먼저 드렸다. 나는 운이 좋게 합격을 했다. 당시 직할병원 3개의 안과 레지던트는 강남 6명, 여의도 4명, 의정부 1명이었는데 그 중에 타교 출신은 나 혼자였다. 나는 처음에는 인턴을 한 강남에 배치될 줄 알았는데, 여의도로 배치가 되었다. 여의도의 분위기는 내가 알고 있는 강남의 안과 의국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또한 안과라는 과 자체가 너무나 세밀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덤벙덤벙거리고 선이 다소 굵은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안과를 지원한 것을 무척 후회를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한 장의 편지를 의국장이었던 정충기 선생님께 남기고 5월달에 도망을 갔다. 나는 정말로 그만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1년차 동기들의 설득과 나에게 정말 잘 해주셨던 정충기 선생님께 미안한 생각, 그리고 타교 출신으로 어렵게 들어와서 안 좋은 선례를 남기면 내가 목적했던 아무것도 이룰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5일만에 다시 복귀했다. 당시 내 머리에는 동기(서진호, 김정훈, 김규식)들을 위해 힘든 1년차만 하고 2년차가 될 때 안과를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어려운 시절 망나니 같은 부족한 나를 이끌어주고 힘을 주신 여러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특별히 3년차이셨던 정충기 선생님과 2년차 정천석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타교 출신인 나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내주시며 많은 조언을 해 주셨고, 표현은 못했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었다. 물론 전우애를 함께 나눈 동기들은 말 할 필요도 없다. 3년차때인 2000년 나는 결혼을 했다. 그 해는 ‘의료대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당시 여의도 전공의 대표는 김양수 내과 4년차 선생님이었는데 수배령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돌아 부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어떻게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내가 부대표가 되어 파업을 이끌게 되었다. 예상과 달리 파업이 길어지면서 병원을 지켜주신 교수님들과 전임의 선생님들께 폐를 끼치게 되어 지금도 두고두고 죄송함을 느낀다. 4년차가 되어 전문의 시험을 치르면서도 많은 추억이 남는다. 당시 소위 삼남지방(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과 서울 메이저 대학사이의 정보누출이 상당히 예민한 부분이 되었었다. 그 문제로 동기 대표였던 서진호, 김기석 선생님이 상당히 힘들어 했다. 나도 부산대 동문들과 가톨릭의대 동기들 사이에 끼여 처신이 상당히 힘이 들었다. 결국가톨릭의대와 부산 사이의 빅딜을 성사시켜 가장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고사장으로 가는 동화 같은 일을 이루었지만 그해 완전히 탈족을 해서 별로 성과는 없었다. 재미있는 추억이다. 당시 고시 위원장이 백남호 교수님이셨는데, 직계 제자들에게도 정보를 흘리지 않는 엄격함을 보이셔서 어렵고도 힘든 분이심을 다시금 느꼈다. 원래 3년차때 해외학회를 가는 것이 전례였는데 파업관계로 가지 못하고 나는 전문의를 따고나서 2002년 6월 샌디에고에서 열린 AAO에 참석했다. 당시 정성근 선생님과 한방을 쓰면서 1년 후배인 김경락, 정의련 선생님과 함께 월드컵 폴란드 첫 승을 미국 ESPN 중계로 새벽에 함께 보는 감격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전문의를 딴 후 나는 구리 성모안과에서 3년을 보내는 행운도 누렸다. 전윤수 원장님과 장광열 원장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도형진, 김정훈 선생님과 함께 지내며 즐거운 병원 생활을 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원모 선생님과 함께 대전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지금의 조치원에 개업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조치원에 작년 11월에 성모안과를 개원했다. 개원을 하기 전에 가톨릭의대 선배님들의 병원을 돌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깊은 조언의 말씀을 들었다. 다시 한번 가톨릭의대의 식구가 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조치원 의사회는 약 50분이 계시는데 가톨릭 의대를 나오신 분이 2분 계신다. 아무 연고도 없는 조치원에 처음 개원을 했을 때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신 분들이 이 두 분 이셨다. 나는 참으로 가톨릭의대에 깊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작년에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이라는 책을 냈다.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전해 주고자 하는 말들을 모아서 쓴 책인데, 부끄럽게도 교보문고에서 추천 베스트셀러에 선정이 되는 영광을 누리면서 현재도 많이 팔리고 있는 모양이다. 책머리 추천의 글은 백남호 교수님이 써 주셨다. 혈기만 있고 부족한 것 투성이었던 나를 위해 추천의 글을 써 주신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나 자신이 의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의국 생활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많은 의국 선후배들이 조언의 말을 해 주었으며 마지막 감사의 글에 부족하나마 감사를 보냈다. 내가 쓴 책에도 썼지만 어느 의과대학을 나왔느냐와 함께 어느 병원, 누구에게 교육을 받았느냐라는 사실은 점점 더 의사에게 중요한 경력이 될 것은 분명하다. 가톨릭의대 안과의국의 자랑스러운 동문에 속해 있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난 가을 학회때 김만수 교수님과 주천기 교수님이 저의 이름을 불러 주시며 반갑게 인사해 주실 때 나는 너무 따뜻한 정을 느꼈다. 내가 강남에 있은 적도 없는데 이렇게 이름도 기억해 주시다니...... 정말 따뜻한 식구같은 정을 느꼈다. 부족한 나는 올해 가톨릭 의대 안과 외래 교수에 임명이 되었다. 양석우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주셔서 지원서 작성해서 보내라고 했을때, “제가 지원할 자격이 되나요”라고 되물었다. “물론이지”라는 말씀에서 나는 양석우 선생님이 형님같이 느껴졌다. 백남호 교수님이 의뢰해 주신 환자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그 환자의 수술은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였다. 나는 그 환자와 함께 사진을 찍어 내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 그 사진을 보며 나를 키워준 가톨릭의대 안과를 더욱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세월은 흘러 흘러 내가 안과에 발을 디딘지 10년이 넘었다. 이제 새로 생길 강남의 병원에서 우리 가톨릭의대, 특별히 안과는 새로운 도약을 할 것이 분명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과 교실의 발전과 가톨릭의대 출신의 개원의들의 발전은 함께 간다고 생각한다. 미약하나마 나 자신도 가톨릭의대 출신의 일원으로 교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실력과 인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알고 있다. 내 친정과도 같은 여의도 의국과, 내 고향과도 같은 가톨릭의대 안과의국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 해야함을 나는 오늘도 내일도 느끼며 살고 싶다. 여의도 파이팅 !! 가톨릭의대 안과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