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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새로남지(밀양속에 비친 교회)

작성자명이**
조회수2311
등록일2009-05-11 오후 3:56:31

“밀양”속에 비친 교회.


언론들이 인간구원과 용서를 다룬 영화 “밀양”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인간 구원과 용서....... 이 영화의 원작인 “벌레 이야기”를 지은 이청준 작가는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지은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 소설은 크리스챤 이장호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밀양이 반 기독교적인 영화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로 말들이 많다. 밀양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 문제로 게시판에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영화“밀양”에서 원작에는 없는 여러 가지 설정과 표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신애가 하나님에 대해 배신감을 느껴 교회에 대해 온갖 위악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던가 교인들과 예배형식 등을 은근히 희화화해서 표현한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원작에는 아이의 어머니가 교도소 면회 후 그야말로 인간 구원과 용서라는 문제로 치열한 자기 고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교회에 대한 배신감을 나타내거나 하는 내용은 없다. 이 영화가 분명 기독교를 호의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절대로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기독교적인 영화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적어도 영화에 나오는 기독교의 외면적인 모습에서는 오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반 기독교적라고 단죄한다는 것은 현재 교회의 모습이 일반인들에게 보여지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거부감과 부정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콕 찍어서 이 부분이 악의적으로 표현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다. 다만 부흥회를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그리 크지도 않은 교회에서 쇼프로에서나 쓰이는 핸즈 프리 마이크를 부착하고 교인들 사이를 누비며 기도회를 인도하는 모습과, 신애의 집을 심방해서 신애를 배제한 상태에서 신애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다소 오버로 보여질 뿐이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교회 다니는 목적에 대해 이야기 하는 대목이 나온다. "연애 할려고", "제사 지내기 싫어서" "자식들 잘 되라고" 종찬이 교회에 다니는 목적도 신애와 함께 하고 싶은 목적에서였다. 쌍욕을 하며 주차 봉사를 하고 노방찬양을 하다가 돌아서서는 담배를 피우며 친구들과 음담패설을 해댄다. 종찬은 신애가 교회에 나오지 않은 이후에도 교회에 다니지만 그 이유를 "습관이 되어서 안 다니면 섭섭하고 교회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 라고 했다. 신도들과 함께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열정적으로 전도했던 신애는 일순간에 신앙을 버리고 교회에 대해 극한 배신감을 나타낸다. 신애는 입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했지만, 실상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교회를 통해 위로받고 뻥 뚫린 가슴 한 구석을 교회로 채우기 위해 신앙을 가졌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당연히 그의 신앙은 어린아이의 신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신앙생활의 외형은 그의 신앙과 맞지 않는 큰 옷을 입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신앙의 걸음걸이로 차근차근 이끌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그런 맞지도 않는 외형적인 신앙생활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 찬사와 신앙생활의 외형적인 몰입은 아이를 잃은 슬픔을 보상해 주었지만 여전히 그는 죽을 겨우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여린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아들이 살아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식사를 하면서 주문을 외우듯 주기도문을 외우기도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유괴범의 딸은 외면하면서 감옥에 있는 유괴범은 용서해야겠다며 공개적으로 떠벌리고 다니며 교인들과 하나님께 더 큰 점수를 따려고 한다. 하지만 유괴범 또한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그의 약한 신앙은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게 되고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제 교회에 대한 증오로 채우기 시작한다. 유괴범은 그와 신애가 하나님께 함께 구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가 아픔을 주었던 사람에게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이 두 명은 구원의 감격은 누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훈련되지 못한 자들이었다. 성숙되지 않은 신앙으로 서로에게 권면을 한 결과 유괴범은 신애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신애는 교회에 큰 상처를 주었다. 신애가 정신병원을 퇴원해서 미장원을 들러 유괴범의 딸과 조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는 장면으로 내 눈에는 비쳤다. 정상인으로 돌아온 신애가 그를 용서하고 다시 신앙으로 돌아갈까 .... ? 신애는 그를 용서하지 않고 단호히 미장원을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잠시 하늘을 노려보며 그가 한때 심취했던 하나님의 존재에 여전히 배신감을 표현한다. 곧이어 신애는 그가 권유한 대로 인테리어를 바꿈으로 장사가 더욱 잘 된다는 이웃의 칭찬을 받는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는 감독의 강한 암시다. 끝까지 그를 위로하고 사랑해준 것은 신앙이 아니라 바로 종찬이라는 생활인이라는 결론을 내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우리나라 대표 감독 박찬욱의 걸작 “친절한 금자씨” 에 보면 유괴살인범으로 몰려 투옥된 금자씨는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만난 듯 신앙인의 모습을 보인다. 출소하는 날 그를 인도했던 목회자가 가져온 두부를 보며 그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너나 잘 하세요” 영화는 영화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만큼 사회상을 잘 반영하는 매체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사회의 빛이 아니라 사회의 짐이라는 말이 들린다. 교회가 건축된다는 소문이 들리면 어김없이 건축을 반대하는 민원이 들어온다. 곳곳에서, 각종 통계에서 한국 교회가 위기라는 사인이 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밀양”이 나와서 우리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 이창동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올해 한국 교회는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교단마다 기념 집회를 열며 부흥을 갈망하고 회개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부흥운동이 우리들만의 리그로 끝난다면 의미가 없다. 평양 대부흥으로 온 평양이 변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배척의 대상이 되는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끼리 모여서 손뼉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 밖에는...... 이창동 감독은 미션 스쿨로 유명한 신일 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을 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신앙의 외형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나 신앙의 본질인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다. 그것이 슬플 정도로 아쉽다. 만약에 그가 교회의 본질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영화를 만들지도, 이런 결말을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진정한 크리스챤을 한 명만 경험했었다면 최소한 야외집회에서 “거짓말이야” 라는 노래가 나오는 장면 같은 것은 삽입하지 않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본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조직에 실망하고 형식에 실망해서 신앙의 본질에 접근하기도 전에 교회를 떠나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악이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신앙이 여린 사람들에게 그러한 죄를 범하지는 않았는가 반문해 본다. 10년쯤 지난 후 이창동,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비칠 교회의 모습에 기대를 걸어 본다. 사역반 “밀양” 단체 관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게 됨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신 사역1반 서정배 목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