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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 정년퇴임 기념문집

작성자명이**
조회수717
등록일2018-03-18 오전 12:05:27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30198&code=23111111&sid1=chr


마음의 친구


그러니까 작년, 아버지 이노균 목사 1주기 추도예배 다음날 이상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렵사리 부탁드린 예배인도를 허락해 주신 목사님께 사례비를 드렸는데, 그 사례비를 어려운 선교사님께 드려도 되겠냐는 전화였다. 목사님은 그런 분이셨다.


목사님과 처음 대화를 나눈 것은 2013년 아버지의 출판기념예배 설교를 부탁드리기 위한 전화였다. 아버지는 부산중앙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환갑이 넘은 1997년 처음으로 안식년을 받아 미국 풀러 신학교로 유학을 가셨다. 1년 동안 강단을 지켜 주신 분이 바로 이상규 목사님이셨다. 당시 나는 서울성모병원에서 인턴으로 정신없이 근무하고 있어서 부산에 잘 내려오지도 못했고 이상규 목사님을 뵙지도 못했다. 이후 아버지는 2002년에 조기은퇴 하셨고 2012년에는 위암수술을 받으시고 항암치료를 권유받았지만, 집필을 위해 항암치료는 받지 않으셨다. 그렇게 해서 이듬해인 2013년에 집필하신 책이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 해설이었다. 이상규 목사님이 추천사를 써 주셨고, 출판기념예배때 설교부탁을 위해 장남인 내가 처음으로 목사님께 전화를 드린 것이었다. 20113월부터 국민일보 미션면에 2년에 걸쳐 전면으로 연재하신 <이상규의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를 스크랩을 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던 때라 목사님께 직접 전화연락을 드리는 것이 몹시 가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첫 통화에서 목사님은 너무나 소탈한 음성으로 설교를 허락해 주셨고, 기념예배때 설교하시는 것이 아버지와 너무 비슷해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후 새로남교회 설교자로 오셨을 때 다시 뵙게 되었고, 이후 새로남교회에서 한 달 동안 목사님을 초청해서 <세계 교회사 강의 >를 매주 목요일 들었는데, 그때 가장 먼저 신청을 하고 가장 앞자리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목사님은 목요일 10시에 강의를 마치시고 KTX로 부산으로 내려가셨는데, 그때 내가 목사님을 대전역으로 모시고 갔다. 너무 열강을 해 주시고 강의가 재미있어 시간에 쫓기는 것이 안타까워 목사님께 목요일 대전에서 주무시고 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드렸다. 목사님이 허락하셔서 2주 정도 교회 옆 호텔을 잡아 드리고 강의를 여유 있게 듣고 질문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오며가며 목사님을 모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듣고 목사님과 많이 가까워졌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내가 의과대학 때 성경 속에 나오는 의학적인 이야기로 책을 내는 꿈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생각만 해서는 아무 것도 나올 수가 없어요. 일단 월간지 같은 곳에 하나씩 연재를 해 보세요라고 하시면서 연재할 잡지를 알아봐 주시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그 말씀에 자극을 받고 교회 월간지에 용감하게 연재를 시작했고, 2여 년간의 연재 끝에 2015년에 새물결플러스 출판사에서 아버지와 공저로 성경 속 의학 이야기라는 단행본을 낼 수 있었다. 목사님은 귀한 추천사도 적어 주셨고, 책이 나오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아버지는 책이 나온 한달 후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는데, 목사님이 가장 먼저 조문을 오셔서 우리 남매들을 위로해 주셨다. 목사님은 이후 그 책을 많은 분들께 추천해 주시고 대학 도서관에 기증도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신문에 칼럼을 실을 때마다 전화로 격려해 주시곤 했다.

목사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시면서도 전혀 목에 힘이 들어가는 일이 없으셨다. 한번은 대화를 나누면서 필자에게 신약에 나오는 혈루병이 어떤 병이냐고 질문을 하셨다. 필자가 의사이기에 의학적인 질문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대 신학자가 이름도 없는 나이 어린 평신도에게 의학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성경에 관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 어떤 목사님도 나에게 성경의 의학적인 질문을 해 온 분이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고, 내 전공과는 다른 영역이기도 해서 바로 답을 드리지 못했고 좀 알아보겠노라고 말씀을 드린 후 나름대로 거기에 대해 공부를 했다. 그래서 성경 속 의학 이야기에 그 부분을 넣을 수 있었는데, 이전 어떤 문헌에도 혈루병의 병명에 대해 언급한 책은 없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대 신학자이기 전에 미천한 자에게도 배울 수 있다면 질문을 하는 분이셨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진리탐구를 위해 계속 연구하는 신학자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그래서 이런 대학자의 반열에 오르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본다.


목사님은 필자가 성경 속 의학 이야기나 의료선교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관련된 자료를 발견하시면 꼭 등기로 부쳐주셨다. 심지어 내가 읽지 못하는 일본어 책도 보내 주시기까지 하셨는데, 그 사랑과 열정에 많은 것을 배운다. 보내 주실 때 항상 친애하는 ....” 친필 사인을 적어 주셔서 목사님의 온기를 책을 펼칠 때마다 느끼게 된다.

일전에 내가 의료선교사 4분의 간증을 모아 의료선교의 길을 묻다라는 책으로 낸 적이 있는데, 4분의 간증만으로 책을 내려니 뭔가 부족한 감이 있어, 목사님께 조언을 구하니 목사님이 의료선교사에도 조회가 남다르시고, 관심도 많으셔서 의료선교사에 대한 개관과 의의를 적어 주셔서 마무리글로 넣은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출판사와 글의 분량관계로 목사님의 글을 조금 줄여야 될 일이 생겨서 결례를 무릅쓰고 목사님께 양해를 구한 적이 있었는데, 목사님은 조금도 개의치 말라고 하시면서 기획자의 의도와 혹시 맞지 않는 점이 있다면 더 고쳐도 된다는 말씀까지 해 주셨다. 필자도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데, 자신의 글을 고친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혹시라도 내가 곤란해 할까봐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도 남에 대한 배려가 스며있고, 내색도 전혀 하지 않으시는 어른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 것 같다.

목사님의 강의나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특유의 낮은 톤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청중의 귀를 쫑긋 기울이게 하는데, 톤이 하나도 안 바뀌면서 간간히 터져 나오는 유머는 그야말로 촌철살인 그 자체였다. 학자들의 강의나 책은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지만 목사님은 달랐다. 정곡을 찌르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 명강의, 명설교, 명저서... 언제까지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아버지의 칼럼을 기독교 신문에 유고칼럼으로 연재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고, 아버지 유고집에 귀한 추천사도 써 주셨다.

아버지가 우리 후손에게 물질적인 유산은 많이 물려주지 않으셨지만, 이상규 목사님과의 관계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버지의 큰 영적인 유산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지금 깨닫고 있다.


이 글을 아버지가 쓰셨으면 목사님께 더 의미가 있었을 것인데, 부족한 아들이 쓰게 되어 송구하기도 하다. 하지만 부족한 자에게 마음의 친구라 불러주시며 이렇게 귀한 책에 글을 쓸 기회를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이종훈:

가톨릭의대 안과 외래교수, 세종시 닥터 홀 기념 성모안과 원장, 새로남교회 월간지 편집장.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 성경 속 의학 이야기저자, 목사, 인생을 쓰다편집자